기억력이 나빠지는 건 노인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셨습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40대에 접어들면서 일을 하다가 잠깐 자리를 옮기면 "내가 뭘 하려고 했지?" 하는 순간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그냥 넘겼는데, 이게 반복되니까 솔직히 좀 무서워졌습니다. 70대 엄마의 기억력이 흐려지는 걸 보면서 남의 일이라 여겼는데, 어느 순간 제 얘기가 되어 있었습니다.

건망증인 줄 알았는데 경도인지장애일 수 있습니다
흔히 건망증과 경도인지장애(MCI, Mild Cognitive Impairment)를 같은 것으로 혼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경도인지장애란 뇌의 기억 회로에 이상이 시작되어 객관적 지표로 인지 기능이 떨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대중교통 이용 같은 일상생활은 겨우 유지되지만, 최근 기억이 잘 나지 않거나 힌트를 줘도 전혀 떠오르지 않는 일이 반복된다면 단순 건망증과는 구별해야 합니다.
건망증은 힌트를 들으면 "아, 맞다!" 하고 금세 떠오릅니다. 반면 경도인지장애는 아무리 힌트를 줘도 까맣게 생각이 나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게 지속됩니다. 제 엄마도 예전부터 물건을 어디다 뒀는지 자꾸 잊어버리셨는데, 처음엔 단순 건망증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인의 이름이나 며칠 전 했던 대화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상황이 잦아지면서 경각심을 갖게 됐습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65세 이상에서 경도인지장애의 유병률은 치매보다도 높으며, 지난 6년 사이 약 6%가 증가했습니다(출처: 보건복지부). 현재 경도인지장애 진단자는 약 297만 명으로 집계되며, 2050년에는 두 배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추정됩니다. 경도인지장애는 연간 약 10%가 치매로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시 말해, 치매로 가기 전 치료의 골든 타임이 바로 이 단계입니다.
내가 걱정해야 할 신호인지 아닌지 간단하게 체크해볼 수 있는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 물건을 어디에 뒀는지 몰라 계속 찾는 일이 이전보다 잦아졌다
- 약속을 잊어버리는 일이 반복된다
- 들은 이야기 내용을 잊고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 사람 이름이나 물건 이름이 잘 떠오르지 않아 머뭇거린다
- 길을 잃거나 익숙한 길에서 헤맨 적이 있다
이 증상들이 점점 더 빈번하고 심하게 느껴진다면, 신경심리검사를 받아보는 것을 고려해보시길 권합니다.
뇌 위축과 혈관 건강, 원인이 따로 있습니다
신경심리검사(Neuropsychological Test)란 기억력, 언어 능력, 시공간 지각력, 집중력, 전두엽 기능 등 전반적인 뇌 인지 기능을 같은 연령대와 학력의 평균과 비교해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검사입니다. 단순히 "좀 깜빡하는 것 같다"는 주관적 느낌이 아니라,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인지 기능 저하의 원인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해마(Hippocampus) 위축이 원인인 경우도 있고, 혈관성 병변이 원인인 경우도 있습니다. 여기서 해마란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핵심 조직으로, 어제 있었던 일이나 방금 만난 사람의 이름 같은 새로운 정보를 등록하고 저장하는 역할을 합니다. 해마 주변 측두엽이 위축되면 이 등록 과정 자체가 흔들립니다.
혈관성 병변의 경우, 뇌의 미세혈관이 막히면서 산소와 영양을 공급받지 못한 뇌세포가 손상되는 방식으로 인지 기능이 저하됩니다. 이상지질혈증(고지혈증)이나 고혈압 같은 혈관 위험인자를 방치하면, 뇌 안에 크고 작은 병변이 쌓이면서 혈관성 치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이상지질혈증이란 혈액 속 콜레스테롤이나 중성지방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진 상태를 말하며, 혈관벽을 좁히고 뇌로 가는 혈류를 방해합니다.
또한 과도한 음주가 해마 기능을 직접 손상시킨다는 점도 간과하기 어렵습니다. 알코올은 흡수 후 뇌 전반에 영향을 주는데, 특히 해마가 새로운 정보를 입력하고 인출하는 과정을 방해해 기억이 저장 자체가 안 되는 상황을 만들어냅니다. 제 경험상 주변에서 "술은 적당히 마시면 괜찮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이미 인지 기능 저하가 시작됐다면 적당한 음주도 뇌에는 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예상 밖이었습니다.
기록 습관과 생활습관 개선이 실제로 효과가 있습니다
제가 직접 실천해보니,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은 "기록"이었습니다. 핸드폰 달력에 중요한 일정을 메모하고, 내일 해야 할 일을 전날 밤 미리 적어두는 것만으로도 불안감이 줄었습니다. 엄마에게도 다육이 식물에 물을 줘야 하는 날을 메모해두도록 권했는데, 이런 사소한 기록 습관이 쌓이면 잊어버리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
운동도 생각보다 빠른 변화를 가져옵니다. 실제로 3주간의 생활습관 개선 프로젝트에서 참가자들의 신경심리검사 점수가 10점에서 14점씩 향상되었다는 결과가 확인됐습니다. 유산소 운동은 뇌유래신경영양인자(BDNF, Brain-Derived Neurotrophic Factor)의 분비를 촉진합니다. 여기서 BDNF란 뇌세포의 생성과 성장을 돕는 단백질로, 달리기 같은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하면 분비량이 늘어나 인지 기능 보호에 기여합니다. 심폐체력이 높을수록 기억력, 집중력, 시공간 능력 등 여러 인지 영역에서 더 나은 결과를 보인다는 것은 최근 발표된 연구에서도 뒷받침됩니다(출처: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식단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블루베리 같은 항산화 물질이 풍부한 과일, 올리브유나 견과류에 들어있는 불포화지방산, 단백질 위주의 식사가 뇌 건강에 도움이 됩니다. 반대로 가공식품은 뇌에 해로운 성분이 많아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저도 뇌영양제를 따로 챙기기 시작했는데, 음식으로 먼저 기반을 잡지 않으면 영양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걸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결국 기억이 조금 흔들린다고 느껴질 때 두려워하면서 방치하는 것이 가장 안 좋은 선택입니다. 유전적 위험이 있더라도 어떤 생활을 유지하느냐에 따라 병의 진행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은, 저에게도 적잖은 위안이 됐습니다. 40대부터 기록하고, 움직이고, 챙겨 먹는 습관을 만들어두면 20년 뒤가 분명 달라집니다. 혹시 최근 깜빡하는 일이 부쩍 늘었다고 느끼신다면, 일단 병원에서 신경심리검사를 받아보시는 것을 권합니다. 불안해하는 것보다 확인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학적 진단이나 치료 조언이 아닙니다. 증상이 의심된다면 반드시 전문 의료기관에 방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