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친한 언니 어머니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평생 식당을 운영하며 누구보다 바쁘게 사셨던 분이, 70대 후반에 일을 그만두시고 나서 급격히 달라지셨다고 합니다. 치매라는 병이 이렇게 가까이 있다는 걸 실감한 순간이었습니다. 치매 초기에 어떤 신호가 오는지, 그리고 흔히 알려진 것과 실제가 얼마나 다른지 정리해 봤습니다.
경도인지장애, 초기신호
일반적으로 치매 초기 증상 하면 "냉장고 앞에 가서 뭘 꺼내려 했는지 모른다"거나 "리모컨을 들고 리모컨을 찾는다"는 식의 사례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 정도 건망증이 치매 초기와 단순 노화를 구분 짓는 기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결정적인 차이는 '나중에 떠올릴 수 있느냐'입니다. 단순 건망증은 시간이 지나거나 살짝 힌트를 주면 기억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경도인지장애(MCI, Mild Cognitive Impairment)는 다릅니다. 여기서 MCI란 치매로 진행되기 직전 단계로, 인지 기능 저하가 검사에서 확인되지만 일상생활에는 아직 큰 지장이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문제는 MCI를 앓고 있는 분들은 일반 노인보다 치매 발병 확률이 10배나 높다는 점입니다(출처: 중앙치매센터).
언니 어머니 케이스를 들으면서 제가 가장 놀랐던 건 기억력보다 행동 심리 증상(BPSD)이 먼저였다는 점입니다. BPSD란 치매 환자에게 나타나는 행동·정서적 변화를 묶어서 부르는 용어로, 망상, 무감동, 우울, 초조, 공격성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실제로 언니 어머니는 "돈이 없어졌다", "누가 가져갔다"는 도둑 망상이 나타났고, TV에 나오는 사람을 보며 화를 내다 TV를 망가뜨리는 일이 반복됐다고 합니다. TV를 몇 번이나 교체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게 단순한 성격 변화가 아니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언니가 말하더군요.
치매 초기에 나타날 수 있는 신호를 크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최근 기억부터 소실: 오래된 기억은 또렷하지만 오늘 아침 식사 내용은 기억하지 못함
- 같은 질문 반복: 하루에 서너 번 동일한 내용을 묻는 행동
- 시간·장소 지남력 저하: 날짜나 연도를 반복적으로 헷갈리거나 익숙한 집 앞에서 길을 잃음
- 무감동·우울: 좋아하던 취미나 활동에 갑자기 흥미를 잃고, 위생 관리가 소홀해짐
- 판단력 저하: 평소 잘 다루던 가전제품 조작이 갑자기 헷갈리거나 계산 실수가 잦아짐
- 후각 저하: 냄새를 갑자기 잘 맡지 못하게 되는 증상, 최근 알츠하이머 전조 증상으로 활발히 연구 중
특히 무감동은 우울증과 구분이 쉽지 않은데, 낚시를 평생 즐기던 분이 어느 날부터 전혀 관심을 두지 않거나, 씻고 옷을 챙기는 일 자체에 무관심해지는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이게 나이 탓이겠거니 하고 넘기기 쉽지만, 제 경험상 이런 변화는 절대 그냥 지나쳐선 안 됩니다.
전조증상 확인과 실제 대응법
일반적으로 "치매 검사는 병원 가서 복잡하게 해야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저는 이게 꼭 진입 장벽이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자가 진단 단계부터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이 있고, 그 방법이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대표적인 자가 진단 도구는 SMCQ(주관적 기억 감퇴 설문, Subjective Memory Complaints Questionnaire)입니다. 여기서 SMCQ란 본인이 스스로 기억력 저하를 얼마나 느끼는지 14개 문항으로 체크하는 설문으로, 8점 이상이면 치매 가능성이 있어 전문 검진을 권유합니다. 또 하나는 KDSQ(한국형 치매 선별 설문, Korean Dementia Screening Questionnaire)로, 증상의 빈도를 0·1·2점으로 나눠 체크하면 자동으로 점수가 산출되는 방식입니다. 둘 다 온라인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언니 어머니의 경우 이런 초기 자가 진단 없이 증상이 한참 진행된 뒤에야 치매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그 후에야 구청에 치매 등록을 하고, 집에 CCTV와 가스 차단 안전장치를 설치했다고 합니다. 요양보호사가 오전에 방문해 돌봄을 제공하고 있지만, 언니는 하루에도 수십 번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며 감정적으로 많이 지쳐있습니다. 화도 나고 마음도 아프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신경심리검사는 학력, 연령 등 다양한 변수를 반영해 약 40분에 걸쳐 진행됩니다. 이 검사를 통해 경도인지장애 여부를 공식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국내 치매 환자 수는 2023년 기준 약 100만 명을 넘어섰으며,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1명꼴로 치매를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출처: 보건복지부). 알츠하이머 치매가 전체의 약 70%를 차지하고, 뇌졸중과 연관된 혈관성 치매가 17%, 파킨슨과 관련된 루이체 치매가 3% 정도입니다.최근에는 레켐비, 도나네맙 같은 알츠하이머 신약들이 나오고 있는데, 이 약들은 초기 환자에게 효과적이라는 점이 강조됩니다. 진행이 많이 된 상태에서는 약효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이 점이 제가 가장 하고 싶은 말입니다. 치매는 빨리 발견할수록 진행을 늦출 가능성이 높습니다.
치매 안심센터를 찾을 때는 검색창에 "○○구 치매 안심센터"처럼 시군구 단위로 검색하시면 가까운 센터를 바로 찾을 수 있습니다. 비용 부담 없이 초기 선별 검사를 받을 수 있어서, 의심이 되면 망설이지 않고 바로 가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가족 중에 비슷한 변화가 보인다면, 단순히 나이 들어서 그러려니 넘기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언니 어머니를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배운 건, 이상하다 싶은 순간이 이미 늦기 시작한 시점일 수 있다는 겁니다. SMCQ나 KDSQ 자가진단부터 시작해서, 의심이 간다면 가까운 치매 안심센터나 신경과를 찾아가시길 권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료 조언이 아닙니다. 정확한 진단과 치료는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